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노프 가문 (문단 편집) ==== 현황 ==== 1917년 [[러시아 혁명|2월 혁명]]으로 인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며 제위를 잃은 로마노프 왕조는, 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이 전부 살해당하여 직계가 단절되었다.[* [[니콜라이 2세]]의 넷째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와 다섯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가 총살 현장에서 살아남아 몰래 빠져나갔다는 루머가 계속 있었다. 실제로 아나스타시야 공주를 사칭한 여성도, 알렉세이 황태자를 사칭한 남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후 니콜라이 2세의 숙부 블라디미르 대공의 아들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빅토리아 멜리타]]의 남편. 1917년 당시 제위 계승 순위 3위였다. 계승 순위 1위였던 황태자 알렉세이와 2위 미하일 대공(니콜라이 2세의 막내 남동생)은 볼셰비키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미하일 대공은 [[귀천상혼]]을 했기 때문에 그의 외아들에게는 제위 계승권이 없었고 그마저도 21살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그러나 로마노프 황족들의 항의를 받았는데 키릴 대공은 당시 3순위 계승권자였지만 정교회에서 금지한 [[사촌간 혼인]]인 [[빅토리아 멜리타]]와 결혼하면서 계승권이 박탈될 뻔했는데, 니콜라이 2세가 원할한 제위 계승을 위해 그 혼사를 인정해 주었는데도 정작 로마노프 황족들 중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 임시정부에 충성을 맹세해서 배신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이 로마노프 왕조의 수장이 되었고 키릴 대공의 사후 그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1917~1992) 대공 또한 아들 없이 사망하면서 [[https://en.wikipedia.org/wiki/Branches_of_the_Russian_Imperial_Family|로마노프 왕조는 현재 여러 개의 파벌로 갈라지게 되었다.]] 현재 러시아 제위 요구자(=로마노프 가문의 수장)는 총 3명으로 그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는 당연히 블라디미르 대공의 외동딸,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제위 계승법은 남자 계승권자가 없는 경우에 한해 딸의 제위 계승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귀천상혼]]한 후손을 제외한 로마노프 가문의 남계후손이 남아있지 않음을 근거로 본인이 적법한 계승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2021년 안드레이 공의 사망으로 귀천상혼이 엮이지 않은 로마노프의 남계 후손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한편 마리야 여대공의 고모이자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작은누나인 키라 여대공은 현재 프로이센 왕실 수장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할머니이다.] 그녀의 외아들 게오르기 대공은 현재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으며, [[러시아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는 바로 앤드루 로마노프 공작(Prince Andrew Romanoff/Prince Andrew Andreevich of Russia)[* 순수 혈통의 마지막 남계 로마노프 혈통이었다. [[니콜라이 1세]]의 막내 미하일과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크세니아 여대공의 손자로 크세니아가 [[크리스티안 9세]]의 손녀이므로 덴마크 왕실 혈통도 아주 조금은 있다. 1923년생으로 끝내 2021년 11월 28일 사망.]이었는데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되어 작가이자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앤드루 공작은 2021년 98살에 사망했는데, 문제는 장남 알렉시스(1953년생)는 자녀가 없고 남동생 둘에 조카딸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그 외에는 앤드루 공작의 5촌 조카[* 앤드루 공작의 사촌동생의 아들이므로 역시 니콜라이 1세-미하일의 후손이고, 또한 크세니아 공주의 후손도 된다.]인 로스티슬라브(1985년생, [age(1985-01-01)]살)[* 아내와의 사이에 이미 [age(2013-01-01)]살 된 아들이 있는데, 2021년 9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니키타(1987년생, [age(1987-01-01)]살) 형제가 있다. 알렉시스 공작 기준으로는 두 형제가 알렉시스 공작의 두 남동생 뒤를 이어 계승순위 3위와 4위가 된다. 마지막 인물은 독일어로는 카를 에미히 추 라이닝겐(Karl Emich Prinz zu Leiningen), [[러시아어]]로는 니콜라이 키릴로비치 레이닌겐로마노프(Николай Кириллович Лейнинген-Романов)인 인물로 자신의 5대조가 [[알렉산드르 2세]]이기 때문에 자신이 적통 러시아 황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기한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장녀 마리아 키릴로브나 여대공의 손자로,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에게는 5촌 조카가 된다. 또한 마리아 키릴로브나의 여동생의 손자인, 프로이센 왕실 수장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와는 6촌간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성씨인 레이닌겐로마노프(Лейнинген-Романов)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렉산드르 2세]]의 직계 남계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계승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는 제7대 라이닝겐 후작 에미히(Emich, Emich Fürst zu Leiningen)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사망하면 라이닝겐 후작위를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나 [[귀천상혼]][* 정확히는 사별 후 재혼이 귀천상혼이다. 재혼 상대는 [[티센]] 가문 출신의 가브리엘레 레나테 티센이었는데, 귀천상혼까지 해가며 결혼했지만 1998년에 이혼하고 레나테는 바로 [[이스마일파]]의 수장 아가 칸 4세와 결혼한다(...) 아가 칸 4세에게도 재혼이었다가 끝내 2014년 또 이혼. 한편 에미히는 2007년에 백작가 딸과 3혼한다.]을 하는 바람에 자신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안톤 알렉세예비치 바코프(Anton Alexeevich Bakov)라는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그의 도움을 얻어 로마노프 제국(Romanov Empire)이라는 [[초소형 국민체]]를 만든 뒤 자신을 전러시아의 황제(Император Всероссийский)[* [[러시아 제국]] 시절 황제의 공식 칭호이다.] 니콜라이 3세로 칭하며 즉위해버렸다. 이후 그는 로마노프 제국이 초소형 국민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실제 영토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땅을 구입하여 그 곳에 로마노프 제국을 실현시키려 했으나,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게 번번히 저지당했다고 한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이들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가장 정통성에 가까운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의 외아들, 게오르기 대공의 아버지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카를 프란츠 공[* 카를 프란츠 공은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직계 후손(6남 요아힘 왕자의 손자.)으로, 게오르기 대공은 현재 프로이센 왕실의 수장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와는 부계혈통상 8촌 사이이다. 또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할머니 키라 여대공이 마리아 여대공의 고모이므로,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기준으로 하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와 게오르기 대공은 6촌이 된다.]으로[* 즉, 마리아 여대공과 카를 프란츠 공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게오르기 대공이다. 현재는 카를 프란츠 왕자과 마리아 여대공은 이혼한 상태로 게오르기 대공은 어머니와 함께 자랐다고 한다.] 마리아 여대공 사후 게오르기 대공이 어머니의 지위를 계승한다면 가문의 이름이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에서 [[호엔촐레른 왕조|호엔촐레른로마노프]]로 바뀔 예정이기 때문에 혹여 러시아에서 왕정 복고가 실현된다고 해도 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이라면 이를 가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적이던 [[호엔촐레른 왕조|프로이센 왕가]]의 성씨를 사용하는, [[빌헬름 2세]]의 직계후손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여담으로 [[빌헬름 2세]]의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프린세스 로얄(Victoria, Princess Royal)]]이기 때문에 게오르기 대공 역시 영국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 역시 공식적으로는 로마노프 왕조라는 이름으로 러시아를 다스렸기 때문에 호엔촐레른로마노프로 바뀌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거기다가 게오르기 대공은 [[독일]]에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구사하는 4가지의 언어([[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중 [[독일어]]가 없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게오르기 대공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자신이 로마노프 왕조의 수장이 될 것이라는 것과 [[표트르 대제]]의 위대함 및 러시아의 역사를 배우며 자란지라 완벽하게 러시아계 스페인인으로 자랐다고 한다.[* 반대로 그의 아버지인 카를 프란츠 공은 게오르기 대공에게 "너는 러시아 황실의 모계 후손이므로 러시아의 대공이 아닌 프로이센의 게오르크 공(His Royal Highness Prince Georg of Prussia)이다."라고 교육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2006년을 시작으로 러시아에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2014년]] [[브뤼셀]]에 설립한 회사의 이름은 Romanoff & Partners (로마노프 & 파트너스)라고 한다. 즉, 현재까지의 게오르기 대공은 러시아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 10월 2일.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의 장남 게오르기 대공이 레베카 베타리니(Rebecca Virginia Bettarini)라는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성 이사악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결혼식이 러시아 본토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1002041500009?section=international/all|#]] 신부인 레베카 베타리니가 왕족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레베카 베타리니는 러시아 대공비가 아닌 '빅토리아 로마노프 공작 부인 전하(Her Serene Highness Princess Victoria Romanoff)'로 불릴 예정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